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다양한 수준과 인식의 다양한 수준에 대해 말하였다. 우리의 경험에서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 실제로 일어나지만 그건 외면에 나타나는 상일뿐이며,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낮은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헛된 생각과 공상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한도나 한계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는 올바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것들은 낮은 수준의 지식만 낳을 뿐이다. 많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실재는 이미 완전히 다 이루어진 것이고 또한 그것을 목적으로 여기는 우리의 분별과 판단하여 앎이라는 것을 바르고 옳으며 마지막 것일 수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잘못을 저질렀다고 헤겔은 그렇게 여겼다. 실재라는 것은 끝나는 데가 없는 과정이다. 또한 실재에 관한 옳고 바른 인식은 오로지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없는 정신에만 있을 수 있다. 실재와 인식 모두 맹세코 완성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찾아내는 세계는 일을 하는 곳으로써 과학의 재료로 우리에게 부여되는 정도에 있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떤 찰나에도 말이다. 하지만 세계라는 것은 세계 역사가 거쳐 지나가는 과정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돼 작용한 것이다. 또 비록 우리의 배움이 훌륭하고 귀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여러 과정일 뿐이요, 개개인의 학자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마음을 가졌는지와 지역의 공동체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모든 현실적인, 오직 하나의 세계는 우주 전체이다. 또한 모든 옳고 바른, 오직 하나의 인식이란 우주의 인식이다. 헤겔은 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철학적으로 아주 잘 지은 이 글귀를 강력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헤겔은 역사의 연속체에서 이 근본이 되는 이치를 떼어 내어 그때그때 사람이 겪는 일들에 이용하거나 맞추어 쓰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일들이 지나감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기대했던 것들이 때때로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삶 안에서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뒤섞여 한데 합해지는 것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우주 전체의 가득 찬 구체적 성질 속에 바르고 옳은 합리성이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여겼다. 헤겔은 때때로 이런 비평을 들었다. 그는 증진된 역사에 대한 의식을 철학에 가져왔다. 19세기 문학에 등장하는 전 국면의 특성들을 만들면서 말이다. 아니면 아무리 적게 잡더라도 자신의 철학에서 이러한 역사의식에 대해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이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험에 대해 시간상으로 전체를 짜 이루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점차 발전하는 과정에 있더라도 각각의 경험은 어떤 것이든지 결국에는 현상적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적 경험이라는 것이 우리가 한 부분에 국한된 경험의 이런저런 결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 경험은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전부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모자람이나 빈틈없이 이해될 수 있다. 조화롭지 않은 것, 의미가 없거나 모자란 것, 거짓되고 망령된 것은 모두 사람의 정신에서는 없어지지 않지만, 절대정신 앞에서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헤겔의 입장에서는 우주는 절대정신이라는 것과 동의어다. 사람들에게 정신이란 자기의 견해나 과정을 기초로 한 하나의 경로지만 우주에 있어서 정신이란 총체적인 역사의 경로로써 이것에 의해 우주는 모자람이 없는 달성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을 신으로 불렸으며 이러한 입장은 유대교 또는 기독교의 신앙 체계와 정확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신이란 첫 번째 원인도, 마지막에 도달해야 하는 목표도 아니었다. 또한 세계와 맞서 만들어진 어떤 존재도 아니다. 헤겔은 그것을 문화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모든 대상, 사건 안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적 발전의 선이야말로 절대적이다. 문화적 발전에 의해 역사는 사람들이 신을 인식하게 되며 또 세계의 총체적인 문화에 다다르는 다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역사는 그러한 것에 의해 신, 다시 말해서 문화 다라는 것이 점차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 그 한없이 넓은 미래에 대해 희망이 큰 계획을 더 충분히 인식하게 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헤겔은 칸트의 몇몇 논의의 중심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맹렬하게 받아들였지만, 또 다른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모두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헤겔은 칸트의 비판 철학을 이른바 절대적 관념론으로 불리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물들 그 자체에 대해 칸트가 가정적으로 생각하여 단정하는 것을 헤겔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이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조직적인 역할을 못 하고 오로지 현상 세계에서만 알맞게 이용된다고 칸트가 설명했을 때, 헤겔은 결국에는 칸트도 이성을 별것 아닌 아무런 인과가 없는 것이 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만약 사물들 그 자체가 이성의 실제 작용 범위를 넘어선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현상이라는 것을 실재와 서로 달라 대비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재는 경험의 뒤편에 있고 사고와는 완전히 떨어져 있는, 실재가 아닌 가정으로 생각되는 세계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부분적인, 그러므로 이치에 합당한 성질이 충분하지 못한 우리의 완전하지 않은 인간 경험이 그것을 넘어서는 정신의 객관적인 질서로써 추구하는 완전히 다 이룬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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