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스 스코투스는 성 토마스의 여러 의견에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둔스 스코투스는 그의 주지주의에는 따르지 아니하고 맞서 거슬렀다. 그리고 특별하게 주의 주의를 두둔한 사람으로 관심을 받았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은 하나님 외부에 있는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그 안에 있는 어느 것에 의해서도 정해지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므로 신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든 세계는 끝없이 지속되는 이성의 묘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는 능력의 표현이다. 둔스는 이러한 성 토마스의 의견들을 자신의 시각에 들어맞도록 바꾸었다. 예를 들어 둔스는 철학과 신학의 차이를 구분 짓는 데는 성 토마스의 입장을 받아들였으나 그보다는 더 세밀하고 엄격하게 자연 신학의 영역을 일정한 한도로 억제했다. 둔스는 하나님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 밝히는 논법에는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운동으로서 증명하고자 하는 논법에는 부정적이었다. 후자에 대한 견해를 입증하기 위한 그의 진술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원칙을 내놓았다. 동적인 것은 어떤 것이든 그 자신 외부에 있는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여진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신 외부에 있는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 근본이 되는 일에 대한 어떤 견해나 생각으로 넘어간다. 물론 다른 것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떤 존재는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고 자신은 움직여지지 않으나 이런 존재는 결론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전제로부터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 밝힐 수는 없다. 그는 끊임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움직이게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둔스는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성 토마스의 영혼 불멸에 대한 많은 논리들에 비판을 가했다. 둔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의 모든 욕구는 하나님의 어질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우주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진다는 가정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성 토마스의 논증을 둔스는 논하여 비평하면서 동물들도 인간과 같이 죽은 후에도 생명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또한 동물들에게는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영혼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어짊, 자애로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성 토마스의 영혼 불멸에 대한 또 다른 논증은 이러하다고 주장했다. 육체가 사라져 없어지는 것과 함께 이성이란 기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가정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이러한 가정에 대해 둔스는 특별히 정해져 있는 어느 기관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여러 신체적 기관이 서로서로 관계를 만들고 일정한 자리에 나누어져 있는 방식에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성에 의해 신앙의 많은 교설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힐 수 있다고 성 토마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그렇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신학은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성을 통해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게 되는 것은 자연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따라서 둔스는 철학으로 신학의 많은 교설을 특별한 사람들이 정확하고 명백한 증거를 이런저런 바람과 두려움에 따라서 꽤 그럴만하게 생각하는 것과 때때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이성으로는 그것의 앞에 있는 것의 존재에 대해 증거를 들어 밝히거나 그 본디부터 가진 성질을 밝힐 수는 없다. 하나님의 제한이 없는 의지 그리고 자유로움에 의해 생겨나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더 나아가 이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이성이다. 반면에 사람 안에 있는 이성은 이러하다. 우선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에 부딪히고 이 부딪치고 이 창조의 본디 가진 성질을 분별하여 알아본 뒤에 또는 이처럼 한 것에 있어서 이러한 창조라고 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되게 하는 것이 그 근본 성질이다. 우선 하나님의 존재가 제시되면 사람은 이것을 이성으로 알 수 있으며 또한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많은 것을 이치나 논리에 합당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피해야 하거나 좇아 구해야 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찾아내거나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지를 이성이 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만들어진 세계의 근본을 이루는 기초를 좇아 구하는데 이성이 사용될 수는 없다. 또한 성 토마스의 이러한 견해에 둔스는 동의했다. 사람은 자신 주위의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들에 대해 그의 자연 인식 모두를 얻게 된다고 하는 규칙이나 법칙을 긍정한다는 점에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성 토마스와 둔스는 견해를 달리했다. 둔스는 많은 제한을 우리의 인식적 삶에서도 또한 받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것은 우리의 가진 살펴보는 능력이 받는 제한이나 조건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타고난 이성에 의해 자신의 감각으로 서로 맞닿게 된 것들, 그것을 넘어서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대상들을 그저 인과의 법칙으로 다룬다. 그리고 좀 더 높은 단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둔스는 성 토마스의 원칙, 즉 일이나 물건들 안에 있는 형상들을 마주쳐야 한다. 대상들 뒤에 오는 관념들을 갖기 위해서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둔스는 철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분석할 때에만 이러한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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