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콩트는 과학의 기초와 같은 굳건한 지적 근본 위에 실증주의 철학을 두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콩트의 책에서 실증주의라는 용어는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그는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은 경험적 증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여겨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기 이전의 독일, 영국의 철학을 배격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한 부분도 있었는데 기존에 있는 과학들에 새로운 과학, 즉 사회학을 덧붙였고 또한 하나의 과학적 체계를 만들어 서로의 연관성을 밝혔다. 하지만 과학의 방식들은 정치, 도덕, 종교의 문제까지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이 사회학은 스스로 자신했다. 사람의 지식이나 지성에 관한 발전에 대해 콩트는 깊이 헤아렸고 모든 연구 범위를 변함없이 특징짓는 하나의 방식을 발견해 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방식을 콩트는 소위 세 단계의 법칙이라고 표현했는데 사람은 생각하고 궁리하는 데 있어서 분명하게 다른 세 단계를 이 법칙에 의하면 거쳐서 지나가게 된다.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 다시 말해서 과학적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신학적 단계에서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 열정에 의해 다시 말해서 자신이 직접적으로 알게 된 한 가지에 의해 아직 알지 못하는 크고 넓은 세계를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은 자연의 힘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거칠거나 친절하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인격에 바탕을 두는 감정으로 자연의 힘은 차 있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같은 것으로 그들은 생각했다. 따라서 세계를 막연히 그려 보거나 실재가 아닌 가정으로 생각하는 어떤 존재들로 가득하게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존재들이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실한 사실 증명의 근거도 형이상학적 단계는 인격화된 역량들에 사람들은 말미암지는 않게 되나 전과 같이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닌 다른 대상에 매료된다. 어떠한 대상에 관념적인 술어를 맞닿아 떨어지지 않게 하고 그 대상을 종류에 따라 가르기만 하면 그것을 그들은 밝혀 말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실체나 힘 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쓰는 이 술어들은 실제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담고 있는 대상들의 선택된 부분들은 관념적으로 가리키는 것에 불과한 것임에도 이 술어들이 마치 지각할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서 있으며 또한 그러한 세계를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로 계산해 내는 힘을 보여주는 것처럼 쓰고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말해 과학적 단계에서 직접 겪은 현상들을 초월하려고 하는 슬기롭지 못함을 사람들은 궁리하여 알게 된다. 경험적 사실의 관찰과 실험에 따라 적극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이러한 현상들을 그 사람들은 여긴다. 그러고 나서 현상들이 의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떠한 신기하고 묘한 것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례나 계속 이어짐, 서로서로의 관계들을 깊이 연구한다. 그렇게 해서 사건들 사이에 함께 존재하는 것과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가 되는 법칙들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사건들을 구속하는 까닭이 되는 힘으로 법칙을 생각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사실들의 한 덩어리에 대한 보편화된 변명으로 여긴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상들과 법칙의 관계는 보편적 사실과 많은 실제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담고 있는 사실과의 관계와 같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지적으로 직접 겪은 일들의 경계 속에 있으며, 상대방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것을 위해 가짜 원리들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접 겪은 많은 특별한 사실들 사이의 확실하고 굳건한 관계들을 드러냄으로써 경험을 쉽게 잘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콩트는 주요한 도덕적 문제들 중 하나는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이타적 마음으로 극복하거나 지배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콩트는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바르게 가르쳐 줌으로 해서 이러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신의 저술에서 드러냈다. 콩트는 사람을 언어, 이상 등을 자신이 성장한 집단으로부터 얻게 되며, 따라서 각 개인이 사회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수록 그 사람의 활동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쪽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성의 힘, 다시 말해서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바르게 가르쳐 이끌어 나가는데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육으로 이타적인 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고 콩트는 강하게 말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서로서로 의자하고 있다는 사실들에 대한 앎이 더 커져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품성의 변화와 도덕적 훈련을 위해서는 많은 열망과 감정에 대한 배움과 되풀이하여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러한 훈련과정은 섬세하게 미리 작성된 종교 생활로만 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콩트는 믿었다. 또한 인간의 품격과 성질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모든 사람은 이러한 종교 생활을 해야 하며, 콩트는 사람의 열망을 도덕적으로 옳고 바르게 훈련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교 조직을 만들어 냈는데 이를 인류교라 불렀다. 인류교는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원리나 신학적 체계를 절대 앞세우지 않는다. 이것은 원래 상태보다 더 숭고한 것으로 인간이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된다는 뜻에서 종교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아닌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대해 제일 앞에 있는 과학적 설명과 사람들의 마음을 같도록 할 것, 국가나 사회 온 인류를 위한 선을 뒤좇아 구하는 데 있어서 각 개인은 모두 하나의 조직체계 아래로 모일 것 그것의 장려함을 목표로 만든다. 그것을 옳다고 믿고 받드는 사람들의 품성에 자신보다 다른 이의 이익을 더 꾀하는 목적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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