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리드는 상식학파 또는 실재론학파라 일컬어지는 한 갈래 중에서 제일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흄의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즉 사색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궁극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는 결말에 대해 반대의 뜻을 펼쳤다. 하지만 이러한 흄의 결말이 그가 제일 처음으로 가정한 것에 대한 논리적 결과라는 것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겼다. 리드는 이 가정에 대해 관념설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단지 정신 속에 남아있는 영상이나 감각에 의해 획득한 현상이 재생되는 것을 깨달을 뿐이고, 이러한 것들을 관념 또는 느낌이라 부른다. 진정으로 우리가 외부의 것들을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것도 우리는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것 그 밖의 것들은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가정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물질세계, 영원히 계속되는 물건, 영혼이나 하나님이 현실적 존재로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이런저런 회의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고 리드는 이야기했다. 따라 그는 사람의 경험의 본디부터 가진 성질과 지나는 길에 대해 다시 참신한 분석을 할 것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더욱 빈틈이나 부족함이 없고 더욱 경험론적인 분석을 관념설이 한 것 이상으로 시도했다. 리드에 의하면 로크는 관념이란 말을 희미해져 분명하지 않게 사용하였고 관념과 이상이란 말은 흄에 의해 그렇게 사용되었다. 제일 먼저 정신이 생각하거나 계획한 대로 일을 해내는 과정을 관념이란 용어는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마음에 무언가를 그려보고, 이해 또는 지각하며, 보고 듣는 것, 생각 등 여러 마음과 관련된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관념이란 용어는 우리의 생각과 궁리, 지각에서 처리하는 대상들을 말한다. 첫 번째의 의미는 우리의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또한 정신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며, 그러한 관념들은 확실히 마음과 관련된 일들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에서는 관념들은 꼭 마음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며 어떤 것이라도 괜찮다. 첫 번째 의미에서 관념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이용하거나 맞추어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언어가 가진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은 성질로 우리는 이러한 올바르지 않은 생각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본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으므로 눈에 보이는 대상들도 마음속에 있다고 딱 잘라 말하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리드는 이런 재미있는 논평을 한 적이 있다. 관념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성질상 타 존재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리드는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던 관념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지각, 감각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각, 감각은 동일한 상황은 아니라고 리드는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지각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감각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각은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지각은 대상을 확실히 앞에 그리고 또한 직접 가지고 있고 이런 대상을 통해 정신의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여기에서 대상이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서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이란 무엇인가? 두 개의 분명한 차이가 나는 요인이 감각에는 존재한다. 맛보고, 냄새 맡고, 듣는 등 감각이란 보통 우리 몸의 세 가지 기관과 관련이 있다. 감각 기관과 그 지각 작용을 통틀어 이르는, 위에서 말하여 감관기관 세 가지의 경우 우리의 정신 안에서 활동을 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우리는 쉽게 의식하지 못한다. 때때로 우리는 향기와 백합꽃을 또는 달리고 있는 자동차와 어떤 소리를 연결 지을 수 있다. 하지만 백합꽃과 자동차는 추리를 통한 것이며, 즉 다시 말해서 그러한 것들은 직접 감각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다른 요인은 지각에 있어서는 셋이다. 둘이 아닌. 따라서 정신과 정신의 활동 및 느낌, 또 이런 활동에 대한 대상이 존재한다. 보고 만지는 것, 감각하고 지각하는 이 두 감관 기관에 우리는 관련된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의 몸은 왜 두 기관의 지각에, 셋은 감각과 관련되어 있는지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겪어 보거나 해 본 사실에 대해 모른 척을 하면 안 된다.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객관적으로 물질에 대해 지각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물건들을 만지기도 하고 보기도 한다. 우리 정신의 바깥 부분에 있는, 또한 우리의 정신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 세상 안에 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 나아가 바깥세상 속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우리가 지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바깥의 세계 속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우리는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또한 전혀 의심을 품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복잡한 모든 사실에 대해 우리의 방심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지 모르는 두 가지 그릇되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리드는 이렇게 충고했다. 우리의 감각을 우리는 별생각 없이 그것을 계산해 내는 물체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감각이 주관에 의해 규정되는 것과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경향을 대강 보아 넘기기가 쉽다. 또한 데카르트에서부터 흄까지, 인식론에 대해 지난 시대부터 내려오는 노선을 덮어놓고 따르면서 그냥 감각들이 여러 가지가 얽혀 배열된 것으로 우리의 지각을 생각하기 쉽다. 그 결과 경험을 함으로써 우리가 확실하게 얻은 다양한 실재에 대해 의심 하게 된다. 지각은 우리가 차례에 따라 진행하여 알게 된 추측으로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추리가 우리가 직접 겪는 과정에서 떠올리게 되는 겨우 얻게 된 감각도 아니다. 지각이란 본원적 형태의 경험이며, 감각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감각과의 차이는 지각은 우리의 감각을 드러나게 하는 대상들을 나타내는데 감각은 불가능하다. 또한 지각은 우리가 직접 겪는 일들에 있어 그 경계 안에서 벌어지는 외부 요건들의 몇몇을 우리가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감각은 이 또한 불가능하다. 지각이란 항상 그 행위와 분명하게 다른 대상 하나를 갖는다. 그 대상은 우리의 지각 여부와는 상관없이 존재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에 의해 발견했다면, 이것은 전혀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에 의해 직접 경험해서 얻은 성질들에 대해 전혀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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