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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럽 철학

by funfearless 2024. 7. 12.

실재론은 20세기 철학의 한 흐름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비판적 실재론과 신실재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실재론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실재론으로 일정한 방향성이 주도된 것은 관념론에 대한 한이 응어리진 마음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버클리와 칸트의 주장과 원리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었다. 버클리가 존재는 피 지각이라고 한 주장과 경험이 세계라는 것은 이성에 의해 구성된다는 칸트의 원리가 그것이다. 또한 헤겔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려고 목적을 세운 것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헤겔 철학은 유럽에 널리 스며들어 퍼져 있었고, 미국, 영국에서도 꽤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실재론적 흐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의 인식이나 경험에서 떨어져 자주적으로 실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인식과 경험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경험한다는 것은 바깥 사물의 지금 여기 있음과 또한 어느 정도 이 바깥 사물의 타고난 성질을 인식하게 하는 정신에 있어 주관적으로 생겨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생활에서 우리는 현상에서 시작해서 이러한 현상들로부터 바깥의 대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미루어 생각해 나가려고 한다. 또한 이 바깥 대상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자주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각과도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때때로 비판적 실재론자들은 바깥 대상들에 대해 분명한 인식에 다다를 가능성에 대해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의 참모습을 사람의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을 펼쳤다. 또한 어떨 때는 물리적 과학자들의 의견들을 바깥 세계에 대한 믿을만한 판단을 내림으로써 곧바로 끌어들여다 놓았다.
그 사람들은 로크의 입장에 서 있었고, 로크의 이런저런 어렵고 힘든 점과 많은 혼란의 몇몇 측면을 비껴갔다고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비판적 실재론자들이 작성한 글을 전체적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이 다른 것을 알게 되는 힘에 대해서 사람의 경험으로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의 참모습을 알 수 없다는 이론과 물리적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리는 실제적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실재론은 조금 더 독창성을 가지는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그들 가운데 몇몇은 경험함으로써 주어지는 여러 조작이나 일들의 각각은 그것만으로는 물리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이 경험으로 주어진 것들은 중성적인 정체나 본질이다. 이러한 실체들의 몇몇이 의식, 기억, 기대 및 그 이외의 이와 비슷한 관점과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되면, 비로소 정신을 체계적인 하나의 통일체로 만든다고 할 수 있고, 또한 정신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심적 실체들이 또 다른 관계를 맺게 되면, 그제야 그 또한 하나의 물질적인 사물을 체계적인 하나의 통일체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또 다른 서로 연결된 것들은 어떤 논리적 체계의 하나의 통일체로 만듦으로써 이룩하여 세워진다. 만약 지금 우리가 어떤 특정한 물체를 본다고 한다면, 그것은 실제에 있어서 우리가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기관에 다른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속에 수많은 그와 유사한 대상들과 서로서로 관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물질적 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력이 미치어 볼 수 있는 범위 속에 있는 모든 대상의 일정한 원리에 따라 계통적으로 결합한 조직만이 그러하다. 당연히 참되고 올바른 존재론적 위치를 이런 대상들의 체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더 나아가 사실이 아닌 사실처럼 꾸며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불려도 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을 것이다. 새로운 실재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물질과 정신을 나누는 이원론이란 없다. 또한 고전적으로 경험론자들이 지속해서 노력해 온 인식론의 많은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20세기 철학의 또 다른 추세였으며, 논리적 경험주의라고도 불렸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현대의 수학 이론을 일반적인 것과는 아주 다른 목적을 위해 아주 빈번히 이용해 왔다. 수학은 실제 존재하는 세계, 또 이 세계의 어떠한 사실적 문제들에 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며,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수학은 하나하나의 명제가 그것의 앞에 행해진 명제들로부터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나오는 명제들이 한데 모여 이룬 덩어리이다. 수학은 오로지 이치에 맞는지에만 관심을 두며 진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논리 실증주의는 언어학적 표현의 여러 가지 유형 사이에 있는 많은 차이에 대해 이치나 진리를 밝히는 것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인식적 의미를 가진 문장, 어떠한 인식적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은 문장, 또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은 문장도 있다. 하지만 이것 그 이상 매우 중요한 차이를 두고 나누는 것을 만들어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석적 성향을 가진 순수하고 완전한, 형식적 명제들인 어떠한 문장들은 인식적 의미를 갖고 있고 통일된 하나로 만드는 성향을 가진 사실 명제들인 어떤 문장들은 또 다른 인식적 의미를 갖고 있다.